앞서간 자의 발자국

 

 발행인

 

 1999년 세기말, 밀레니엄을 준비한다고 세계가 왁자지껄 할 때다. 그 와중에 새천년은 백두산 천지에서 다이빙으로 시작하자는 다소 황당한 발상이 구체적인 계획으로 잡혔다. 그리고 그 무리 한가운데 전혀 의도치 않게 나도 있었다.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 걸 뭣 하러 무거운 보따리까지 메고 산을 오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가 나였다. 서울에서 태어서 수십 년을 살았어도 남산 꼭대기 한번 가 본적이 없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황당한 계획에 동참하여 산중턱을 오르며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것도 체감온도 영하 40도에 온통 눈 덮인 백두산 자락에서 몸을 가눌 수도 없는 강풍과 맞서면서 말이다. 멋모르고 호기 있게 도전을 했으나 이내 나의 무지와 무모함을 자책하며 사력을 다했다. 산 아래쪽에서는 밀레니엄을 축하하는 불꽃놀이로 하늘을 온통 화려한 색으로 수놓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쁨을 만끽할 경황이 없었다. 앞서간 일행들을 뒤따라가기도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밀레니엄을 백두산 자락에서 사투를 벌이며 맞이하였다.

정상은 보이지도 않고 길은 갈수록 험해지고 눈은 무릎까지 쌓여 한발 내딛기조차 쉽지 않았다. 앞선 일행과 점점 간극이 벌어졌다. 더 이상 힘들어서 포기하려던 때에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선배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힘내라는 한마디와 함께 앞서 걸으며 눈길을 헤쳐 나갔다. 앞선 선배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니 한결 편하고 마음이 든든했다. 그렇게 밤새 선배의 발자국을 밟으며 정상으로 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밀레니엄의 해가 천지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해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묵묵히 앞서서 길을 헤치고 길을 내준 선배에 대한 고마움에 감사했다. 그 이후로 나는 4번이나 더 새해를 천지에서 맞이하였다. 그때마다 선배의 발자국을 따라 올랐다.

 

앞서간 자, 그게 바로 선배이다. 앞서가는 자는 눈길을 헤치고 길은 만들며 일행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가기 위해서 뒤따르는 자들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몇 배의 고통이 따른다. 그럼에도 앞서기 때문에 선배이다. 세상은 그렇게 앞서는 자들로 인해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뒤따르던 자도 때가 되면 앞서는 자가 된다. 그런 연으로 이어지는 사이가 선후배이다.

 

다이빙 계의 선후배 관계는 어떠한가? 많은 사람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다이빙 여행지에서 만나도 서로 본척만척 이다. 심지어 한 배를 탔음에도 완전 남인 경우도 허다하다. 상황이 이러니 업계에서 상도덕이 무너진 지 오래이다. 관계가 유지되려면 어느 한쪽만 잘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양쪽 모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존중해야 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다이빙 산업은 선후배가 함께 뭉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상황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앞서가는 자와 뒤서가는 자의 관계가 돈독해야한다. 코로나 상황으로 어려운 시기이다. 함께 지혜를 모아 상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사용자 divesimon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