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곧 나를 위한 것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어머니는 척추에 문제가 있어 다리가 저리고 땡겨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다. 연세가 많아 수술을 못하고 통증 부위를 완화 시키는 시술을 하였다. 첫 번째 시술은 그 효과가 매우 좋았다. 하지만 몇 달 뒤 다시 통증이 심해져서 다시 시술을 하였다. 그런데 오히려 더 아프시다. 병원에 찾아가서 통증을 호소하니 진통제 한방 놔주고 끝이다. 그 후로도 진통은 계속되었다. 두 달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진료 예약 날에 맞춰 오늘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에게 증상을 호소하였다. 솔직한 답변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의사 자신도 잘 모르겠단다, 다시 한 번 시술을 예약했다. 그런데 간단한 시술 임에도 4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어머니는 어찌하라는 건지…….
병원에만 다녀오면 짜증이 난다,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의 태도 때문이다. 고통의 정도야 각자 다르겠지만 환자가 의사를 찾을 때면 나름 참지 못한 고통과 불편함 때문이다. 그들은 의사가 꼭 병을 고쳐주지 못하더라도 그를 통해 위한을 받을 수도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랬다. 아프시다가도 병원에만 가시면 평안을 찾으셨다. 어머니 역시 병원에 가신 다면 아침부터 준비하고 뭔가 기대감을 갖으신다. 나 또한 병원에 갈 때면 두려움과 설렘이 있다, 의사의 한 마디는 마치 판사의 결정문과도 같다. 때문에 신중하여야 하고 당사자가 이해 할 수 있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내가 격어 본 그들은 환자가 자리에 앉아 자세도 잡기 전에 결과를 이야기 하고 다음 예약 일을 간호사와 상의하라는 한마디로 기대감을 허탈하게 한다. 의사와 상담을 하고 나오면 도대체 그 내용이 뭔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이런데 나이 드신 노인들은 어떨지 참으로 안타깝다.
물론 의사들이야 하루에 수많은 환자를 대해야기에 일일이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굳이 그 정도 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진지하고 친절했으면 한다. 그들도 가족이 있을 것이고 그 역시 역할이 바뀌어서 환자의 입장이 될 때도 분명 올 것이다. 그렇게 입장이 바뀔 경우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을 느끼지 않는 그런 그들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곧 나를 위함이라는 것을 그들은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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