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사진에 대한 나의 생각
물 속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수중 사진을 접할 수 있었다. 벌써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나에게 수중 사진의 매력은 여전하다.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할 때는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기다릴 때의 설렘이 좋았다. 필름의 남은 컷 수를 계산하며 신중하게 셔터를 누를 때 들리는 셔터음을 잊을 수 없다. 필름 카메라 시절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언젠가 시간이 나면 따로 이야기 해 보겠다. 어쨌든 그러다가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올림프스 3040으로 촬영한 사진을 잡지에 실험적으로 게재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필름 카메라가 대세였다. 점차 신문사에서부터 카메라가 디지털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풀프레임 디지털카메라는 너무 고가라서 사용할 엄두도 못 냈다. 그러다가 2009년 처음으로 풀프레임 디지털카메라 시스템을 갖추었다. 니콘 D700 이었다. 일단 필름 컷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았다. 필름을 현상하지 않아도 되었다. 인쇄를 위한 색분해를 할 필요도 없었다. 필름 값, 현상비 그리고 마운트 비용은 물론 필름을 보관하려는 슬라이드 북도 필요 없어졌다. 하지만 한 가지 애매한 것이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고 후보정을 하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는 이른바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필름과 디지털이 혼재하던 시대에서 이는 커다란 논쟁거리였다. 당시 수중촬영대회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결과물을 포토샵으로 수정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다가 몸싸움까지 벌어질 뻔하기도 하였다. 일부 부정론 자들은 포토샵 경연대회라고 할 정도였다. 촬영대회 주최측도 이에 맞춰 심사기준을 제시하였다. 아직도 이 문제는 존재하기에 촬영대회마다 규정이 다르다. 하지만 촬영대회의 경우에는 카메라를 봉인하고 원본 심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공모전일 경우에는 일정한 부분을 포토샵을 비롯한 수정 프로그램으로 보정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일정 부분이라는 기준이 애매하기에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보정 프로그램의 진화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최근에는 AI까지 동원되고 있다. 이제는 어디까지가 작가의 창작인지 구분이 가지 않고 있다. 스트로브도 없이 촬영한 사진이 보정을 거치고 나면 완벽한 사진으로 재 탄생한다. 원본 사진과는 전혀 다른 사진이다. 사진을 촬영하는 기술보다는 사진을 만져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작가의 능력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이러한 보정 기술의 정점이 어디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진의 가치와 철학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사진가들은 또 다른 선택의 귀로에 서있다. 마치 필름 카메라 시대에 불어닥친 디지털 카메라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였듯이.
나는 그 고민을 어떻게 받아들었나 회상해 본다. 나는 필름이 디지털로 넘어가는 것을 대세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더 적극적이었다. 앞서 열거한 여러 가지 장점이 필름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껏 매우 만족하고 있다. 포토샵에 대한 거부감도 별로 없었다. 과거형으로 서술한 이유는 현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포토샵을 배워 본 적도 없다. 그냥 먼지 지우고 색상만지는 정도 조금 할 줄 안다. 사진 좀 멋지게 만들자고 포토샵으로 이것저것 만지다 보면 오히려 사진이 더 이상해 지기에 살짝 화장 정도로 만족한다. 그 이상 만지다 보면 내 사진이 아닌 듯한 분장이 되어 버린다. 그건 내가 원하는 내 사진이 아니다. 내 사진은 내가 조명을 맞추고 앵글을 보고 셔터를 눌러서 만들어 낸 그것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약간의 화장을 하는 것이 전부여야 한다. 이는 단지 내 생각이고 내가 사진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이자 신념이다.
가뭄에 콩 나듯이 등 떠밀려서 타인에게 수중 사진을 강의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제일 먼저 사진에 대한 의미를 그들에게 각인 시켜준다. 사진(photography)의 의미는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그 빛은 자연광과 인공 광을 포함한다. 여기서 애매한 것이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인공광이 문제가 된다. 이는 다른 의미로 포토샵과 같은 류의 프로그램을 통칭한다. 나는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빛을 내 사진에서 큰 의미를 두질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사진은 자연광과 하우징에 장착된 인공 광만을 포함한다. 사진가는 빛을 조절할 수 있는 조리개, 셔터 스피드, 감도(ISO) 그리고 인공광을 적절히 조합하여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그런 경우의 수를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작가의 성향이 달라진다. 그렇게 촬영한 결과물이 내 사진이다. 이후 분장을 통해 만들어진 사진은 다른 분야의 내 사진은 될 수 있으나 내가 의도하고 촬영한 내 사진이 아니다.
나는 내가 촬영한 내 사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조합하여 내가 원하는 장면을 정지시켜 육상으로 들고 나오는 과정을 즐긴다. 내가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중 사진에 몰입하는 이유이다. 그 즐겁고 스릴 넘치는 과정의 결과물을 컴퓨터에 넣어 화장을 넘어 분장을 하고 남 앞에 선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다, 더해서 굳이 그 정도로 사진을 재포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다. 어차피 디지털 카메라는 촬영 즉시 현장에서 그 결과물을 확일 할 수 있다. 불만족한 결과물은 지우고 다시 촬영하며 좋은 결과물을 만들면 된다, 언젠가 촬영대회에 참가한 후배가 내게 말했다. “형님 요즘 카메라가 얼마나 좋은데요 그냥 대충 촬영하고 필요한 부분만 빼 내면 돼요” 이 이야기는 실화다. 난 그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촬영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은 녀석인데 안타까웠다. 문득 선배 사진가의 말이 떠올랐다. “ 사진은 머리로 찍는 거야”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어떡하면 내 앵글을 만들까를 고민한다, 내가 수중 사진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이다.
수중 카메라가 수중 장비가 된 지 오래다. 비단 수중 사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사진가인 세상이다. 매일 수많은 사진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수중 사진역시 다이버들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사진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장황한 설명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때마다 역시 그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사진은 사진으로 말한다””
잘 나온 사진과 좋은 사진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좋은 사진보다는 잘 나온 사진을 만드려고 노력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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